도쿄에는 수많은 재즈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낡은 계단 아래 숨은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신주쿠의 전설적인 재즈바 ‘더그(Dug)’.
1967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하루키 무라카미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며, 라이브 공연이 없는 대신, 진짜 재즈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용하고 진한 여운을 남겨주는 공간입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조용히 잔을 기울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곳은 반드시 체크해봐야 할 도쿄의 명소입니다.
하루키가 사랑한 재즈 공간, 더그의 시간
신주쿠의 번화한 거리 한가운데, 지하로 향하는 작은 입구가 하나 있습니다. ‘Jazz Bar Dug’라는 작은 간판, 그리고 그 아래 오래된 포스터와 엽서들이 뒤섞여 벽을 채운 좁은 계단.
이 모든 것이 마치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1967년에 문을 연 더그는 단순히 ‘오래된 바’가 아닙니다. 도쿄 재즈 신(Scene)의 역사 그 자체이며,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거쳐간 정신적 성지 같은 장소죠. 일본 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곳의 단골이었다는 점에서, 더그의 특별함은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멋을 부리지 않은 멋’입니다.
낮은 천장, 빛바랜 사진과 포스터, 그리고 테이블 사이로 퍼지는 진한 재즈 사운드가 공간 전체를 감싸는 순간, 여기가 단지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되죠.
카운터 옆 벽면을 가득 채운 재즈 아티스트들의 사진들, 손때 묻은 LP 자켓과 재즈 잡지들, 그리고 스피커에서 흐르는 빌 에반스, 존 콜트레인, 찰리 파커의 음악은 이 공간의 감도를 완성합니다. 🎼🖤
이곳에는 라이브 공연이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깊고 진하게 재즈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음악은 하루 종일 바뀌지 않을 듯 잔잔히 흐르지만, 하나하나 선곡된 곡들은 마치 시간을 이끄는 큐레이터처럼 공간과 순간을 조율합니다.
더그의 좌석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금연석과 흡연석이 구분되어 있지만, 흡연석 쪽 자리가 더 중심에 위치해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기 좋은 편입니다. 조명이 낮고 은은하게 흐르는 공간에서, 한 모금의 와인이나 칵테일을 즐기며 음악 속에 스며드는 감각은 도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
더그는 단지 유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도쿄의 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왜 하루키가 이곳을 좋아했는지’—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클래식 칵테일부터 와인 한 잔까지, 더그의 바 메뉴
더그에서는 메뉴를 펼치는 순간 조금 놀랄 수도 있습니다. 와인, 위스키, 브랜디, 칵테일까지 다양한 주류 메뉴가 준비되어 있지만, 가격은 꽤 합리적인 편이거든요.
이만큼의 분위기를 이 정도의 가격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게 바로 ‘도쿄다운 노포의 힘’이겠죠.
클래식 칵테일도 기본 이상으로 잘 나옵니다. 브랜디 알렉산더, 진 토닉, 다이키리 등 웬만한 칵테일은 모두 주문 가능하며, 유리잔의 형태와 서빙 방식까지 오래된 바의 전통이 느껴져요.
특히 브랜디 알렉산더는 진한 브랜디와 크리미한 바디감이 어우러져, 단맛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제격입니다. (단, 요구르트처럼 입 안에 남는 여운이 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맛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칵테일보다는 레드 와인 한 잔이 이곳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렸습니다.
와인 바틀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단품 와인 가격도 착해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아요.
조용한 재즈를 들으며 스툴에 앉아 와인을 홀짝이면, 그 순간만큼은 도쿄의 시간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무엇보다 더그의 주류 리스트는 단순히 ‘많다’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에 맞는 구성이 잘 짜여 있다는 점에서 인상 깊어요.
술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라, 공간에 맞춰 균형 있게 준비된 것이 진짜 노포의 클래스 아닐까요?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건 카운터 한켠에 놓여 있는 작은 종이 성냥갑입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이 감성 아이템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 디자인도 무척 귀엽고 빈티지해서,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이거 기념으로 가져가도 되나요?” 하고 물어보게 될 정도예요. 성냥 하나에도 공간의 감성이 녹아있는 곳. 🕯️🧾
더그의 바는 단순히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하는 한 잔의 미학’을 완성시키는 장소입니다.
마신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 시간을 감각적으로 즐긴다는 의미에서, 이곳은 정말로 ‘술을 마시는 공간’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엽서, 포스터, 음악… 모든 것이 아카이브인 공간
더그는 단순한 바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재즈 문화를 아카이빙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벽면을 가득 메운 재즈 페스티벌 포스터, 명연주자들의 흑백 사진, 빛바랜 재즈 잡지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마치 한 시대의 음악적 기억이 이 공간에 저장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좁은 계단 벽면부터 내부 좌석 사이사이까지—무심한 듯 세심하게 붙어 있는 흑백 포스터들,
바 테이블 옆 구석에 조용히 꽂혀 있는 엽서와 포토북, 그리고 구석에 놓인 작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빈티지한 음원.
이 모든 요소들은 계획된 인테리어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감정과 기억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
화장실 문에 붙은 손수 제작 스티커들마저 누군가의 애정이 느껴지는 감성 소품처럼 느껴지고,
카운터 근처에 쌓여 있는 LP 음반과 재즈 서적들은 그냥 장식이 아닌, 실제로 시간을 들여 ‘감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더그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와, 진짜 멋있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수없이 반복되는 공간,
그게 바로 더그의 진짜 매력입니다.
과하게 꾸미지 않고도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이곳은 그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는 공간이에요.
바닥 타일 하나, 벽의 균열 하나까지도 그대로 있어야 더그인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더그는 혼자 앉아 음악에 집중하는 것도,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모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순간이 어울리는 곳이죠. 🛋️🎧
다만, 흡연석과 금연석이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흡연석 쪽이 공간의 중심이며 분위기 자체도 더 묵직합니다.
비흡연자 입장에선 살짝 아쉬울 수 있지만, 담배 냄새에 크게 민감하지 않다면 흡연석 쪽 자리는 꼭 한번 경험해볼 가치가 있어요.
그 특유의 연기와 음악, 그리고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한 장의 앨범 커버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줄 거예요.
결론: 재즈를 사랑한다면, 도쿄에서 더그는 필수입니다
‘더그(DUG)’는 도쿄의 수많은 재즈바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감도를 가진 공간입니다. 단지 하루키가 다녀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재즈 아카이브이며, 오롯이 음악을 ‘듣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펼쳐지는 그곳은, 마치 시간의 틈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줍니다. 낮에는 재즈 카페처럼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펼칠 수 있고, 밤이 되면 묵직한 재즈 사운드 속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하루를 정리하는 술집이 됩니다.
가득 찬 음반과 벽면을 채운 재즈 포스터, 손때 묻은 성냥과 엽서들까지—모든 것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아주 명확하게 ‘이곳만의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도쿄에서 진짜 음악을 마주하고 싶다면, 그리고 음악과 술, 공간과 시간이 조화를 이루는 장소를 찾고 있다면, ‘더그’는 그 모든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단 하나의 바가 되어줄 거예요. 🎺🥃📻
📍 주소: 1 Chome-10-2 Shinjuku, Shinjuku City, Tokyo 160-0022, Japan
🕒 영업시간: 12:00 ~ 23:00 (연중무휴)